숭례문
숭례문이 불에 타서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은 '국보 1호'가 허망하게 불타버린 것에 대한 쓴 웃음이었고 허탈한 웃음이었다. 일차적으로는 국가의 보물이라면서 '국보 1호'라고 이름 붙여 놓고 정작 허망하게 불에 타도록 방치한 정부에 대한 조소였다.
숭례문이 불타버린 사실에 대해서 현 정부의 책임을 이야기하며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허술한 문화재 관리를 한탄하였고, 소방 측의 대처가 미흡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 한편에서는 우리 문화재를 지키지 못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부끄럽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명박 당선인이 서울시 운영 당시 숭례문 완전 개방을 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국민의 성금으로 복원을 이야기하는 이명박 당선자의 만담(?)과 숭례문이 무슨 불우이웃이냐고 멋지게 잽을 날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외로 '숭례문=국보 1호=지켜야 할 것'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이 더욱 씁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들은 불타버린 숭례문을 보고 지켜야 할 의미를 역으로 찾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숭례문을 지켜야 할 의미들을 찾기 위해서 이제서야 책을 뒤지고 있었다. 화재가 있은 후에 한 블로그에 적힌 숭례문의 역사적인 의미와 문화재적 가치에 대한 정보들은 분명 사람들에게 늦었지만 숭례문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외국 정부는 자기 나라의 문화재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고, 국민들은 어떤 식으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사람들에게 제시해 주는 글은 우리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너무 늦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보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관점에서 숭례문이 불타버린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차라리 솔직하다. 사람들은 아침 만원버스에 몸을 싣고 숭례문 주변을 지나 회사로 출근하던 사람들이나 숭례문 주변에서 쇼핑을 하고 돌아다닐 때 항상 옆에 있어서 익숙했고, 언제라도 옆에 있을 것 같은 일상의 한 풍경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 허탈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숭례문의 의미를 그렇게 찾고 있었다. 이들에게 숭례문은 일상이었고, 기억의 부분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숭례문 한 컷 내 손으로 찍어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차라리 소박하다. 이런 사람이 자신의 아이들과 같이 나눌 기억 하나를 영영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며 안타까워하는 것은 차라리 절절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숭례문은 어떤 의미였을까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아마도 국사책에서 '국보 1호'로 암기했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각종 퀴즈 프로그램에서 자동적으로 암기된 사항을 출연자의 입을 보면서 조용히 같이 뱉어내면서 자신의 지식을 확인하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올림픽 같은 각종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나 기념주화 기념우표 안에서 그려진 숭례문을 떠올리는 것이 사람들이 숭례문에 대해 기억하는 가장 보편적인 인상이 아닐까 한다. 일상적으로 숭례문을 보기 힘든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하리라.
숭례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이 정도라는 것에 대해서 인정한다면 이번 숭례문 화재는 좀 더 폭넓게 이야기 될 필요가 있다. 이는 사람들의 인식 부족을 자책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의 인식이 그 정도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던 조건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문화재의 현재성은 그 시대 사람들과 어떻게 호흡하느냐이다. 숭례문이 사람들과 호흡하지 못했다면 어쩌면 화재가 나지 않았더라도 이미 숭례문은 불에 탄 것과 다름없다. 있어도 없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숭례문뿐만 아니라 모든 화석화된 문화재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호흡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문화재에 대한 교육의 문제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즉 문화재와 역사를 단지 불국사에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고, 책에서 그림을 두고 이 두 탑의 생김새를 구분해내는 것에서 그쳤던 교육에서 달라질 필요가 있다. 직접 가서 보고, 느껴보고, 의미를 찾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숭례문을 개방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개방하면서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했고, 다른 문화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나는 내 조카들이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흰 종이에 물감을 칠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형태와 상관없이 놀이하듯이 그림 그리고 이런 저런 색깔을 섞어 만들어지는 다양한 색의 변화를 느껴봤으면 한다. 그리고 어느 문화재 앞에 가서 이것이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재를 보았을 때의 느낌을 이야기해 줄 수 있었으면 한다. 찰흙으로 모양을 만들던 느낌으로 탑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찰흙을 갈라지지 않게 곱게 그늘에 놓고 빛이 닿을세라 안절부절 못하며 살피던 느낌으로 토기인형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조각 칼로 인형을 만들던 느낌으로 탑을 바라보고 만져보고 온기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문화재가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는 그 뒤에 알아도 충분하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는 의미들을 길어 올릴 수 있을 때 또다른 숭례문은 생기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0 TrackBacks
Listed below are links to blogs that reference this entry: 숭례문.
TrackBack URL for this entry: http://dknow.cafe24.com/mt/mt-tb.cgi/66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