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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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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mbnail image for 전역증.jpg

 

현대 사회는 서류에 의해서 (전자서류를 포함하여) 움직이는 사회라 할 만하다.

사람이 움직이면 그 사람에 대한 서류가 따라서 움직이고,

설사 사람이 움직였다고 하더라도 그 서류가 따라오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장소가 동사무소이던지, 은행이던지, 공항이던지간에

서류에 기입된(혹은 기입되지 않았거나  불일치하는) 사소한 항목에 의해서

우리는 종종 곤란을 겪곤 한다.  

 

 

서류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회에서 증명 사진은 그 사람을 대표한다.

우리는 서류에 증명 사진 하나를 붙임으로써

그 서류에 나열된 내용이 사진의 주인에 관한 것임을 명확히 한다.

다시 말해서 증명 사진은 사람과 서류를 매개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특정 번호나 도장같은 다른 인식 지표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사진은  그 사람 자체를 직관적으로 인식 가능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척 보면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나에 관한 증명 사진이 붙은 서류를 볼 수 있고,

관리할 수 있는 사람 혹은 조직이 있다는 것은

나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 또는 시선이 

나를 벗어난 어디엔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힘은 약하게는 사회적 질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합의라는 형태로 

나의 행동에 스며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방식으로 자신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정도로 약하게 작용한다),

강하게는 나의 신체에 형벌을 가하거나 자유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감옥이나 군대가 단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힘을 가진 주체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힘을 행사하는 사람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행사한다기보다 시스템의 논리를 이행하는 대리인에 불과하다면

힘의 주체는 시스템(혹은 사회조직) 그 자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거칠게 말하자면 서류에 나열된 '정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 서류의 내용이 백지라면 서류는 나를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중 특히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기원(orign)에 관한 것과 역사에 관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즉, 주소, 생년월일, 가족관계 같은 정보들은 위치(location)와 시점(time)을 포함하기에 

나의 신체와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나도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거대한 힘 또는 시선이 

나의 외부에 존재하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서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증명사진은 실제 나와 나를 드러내는 서류를 매개하는데

핵심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군복무를 하면서 크게 세번의 사진을 찍었다.

한번은 훈련소에서 '군인'이 되기 위한 훈육(discipline)을 받으면서 찍은 것이고,

한번은 소방 훈련 후에 근무지에 배치받은 날 찍은 사진이며,

마지막은 얼마전 즉 전역 직전에 찍은 것이다.

 

 

첫번째 사진은  

육군훈련소에서 나를 관리하기 위해서 인사기록카드에 붙히기 위해 찍은 것이었고,

두번째 사진은

내 배명 근무지에서 신상기록카드를 작성하기 위해서였으며,

세번째 사진은

전역증과 그와 관련된 나도 모르는 특정 서류에 붙히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것이다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없을지 혹은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

더 큰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사기록카드에는

각종 나의 정보(주민번호, 이름, 본적, 주소지, 가족관계, 학력 등)들이 드러나있고,

사고가 발생했을 시(탈영같은 행동을 포함하여) 연락할 수 있는

가족, 친구, 연인의 정보도 포함되도록 되어 있다.

그 서류에 나의 성장사며, 가족에 대한 생각, 장점과 단점들을

끊임없이 적어나가게 했던 2년 2개월 전의 어느 날을 기억하며,

그것은 나를 움직일 수 있는

혹은 포착할 수 있는 힘을 넘겨주었던 과정이었음을 알고 있다.

또한 나를 관리하는 담당관이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관찰해서 적어놓은 지난 2년여 기간에 관한 기록지는

타자에 의해서 이러한 과정이 강화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난 서류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었고, 관리되고 있었으며,

이제 시간이 다 되어 사회로 내보내지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세 번째 사진을 찍었다.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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