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영어교육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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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5살에서 7살의 아이들이 많이 방문한다. 크게 어린이집, 유치원, 미술학원에서 단체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유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학원에서 단체로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영어학원에서 오는 아이들은 다른 단체와는 다른 특징적인 것이 있다. 그건 외국인 선생님들을 동반한다는 것과 아이들이 여기서도 영어를 쓰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영어를 쓰려는 경향이 많은 이유는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따르면 학원에서는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인 듯 하다. 그래서 학원 생활의 연장선상인 이곳 견학에서도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쓰는데 망설이는 것이다.


최근에 이곳을 방문한 한 영어학원의 경우도 그러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줄 세울 때도 혹은 조용히 경청할 것을 이야기할 때도 영어를 사용한다. "make one line." "everybody sit nicely and be quiet please." 아이들도 재미있다는 표현이나 무섭다는 표현을 영어로 거리낌없이 한다. "so funny." "scary" (이런 표현들이 정확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일단 논외로 하자.)


이런 광경은 영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어색한 나로서는 낯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원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의미 정도는 짐작할 수는 있는데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을 만들어서 익숙하게 만들어 주려는 의도이겠군."하는 것과 더불어 "이렇게 언어를 배우면 효과가 있겠구나." 하는 것이다. 동시에 한편으로 약간 씁쓸한 것은 우리 사회는 교육의 기회가 어렸을 때부터 차이가 난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 앉아있는 일반 유치원 아이들과 이들을 보면 외국인들과 함께 영어를 일상적으로 쓰면서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다.

교육의 사회적 기능은 기본적으로 국가 혹은 체제의 ‘유지’를 위함이다. 따라서 사회의 유지에 필요한 구성원을 만드는 것이 교육을 실시하는 국가의 중요한 목표이다. 하지만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회 불안 요소 또한 해결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흔히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기능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교육은 가지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공통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이러한 가치에 근거해서 교육을 국가의 미래라고 치켜세우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통의 기회’란 누구나 필요한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공교육의 영역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앞서 말한 사회 불평등 구조의 개선을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는가?


아쉽게도 구체적인 통계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말이고 요즘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집안의 사람이 더욱 성공한다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개인의 경제력이 교육의 기회와 그 결과물까지 좌우한다는 의미이다. 신림동 고시촌이 고급화되고 있다는 기사가 달라진 시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또한 경제적인 안정을 보장해준다고 하는 의대나 법대 전문대학원의 등록금은 서민들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높게 책정되어 있다. 영어구사능력이 개인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면서 각종 어학연수가 유행처럼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비용 역시 서민들이 접근하기 힘든 액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려운 현실을 딛고 고등고시에 합격했다는 사람의 기사가 씁쓸하게 여겨지는 것은 언론들의 그러한 기사보도가 교육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기보다 기사를 통해서 ‘더욱 노력하라.’라는 이데올로기를 개인들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그들이 의도하였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이런 기사는 교육에서 ‘국가의 역할’을 감추고 은폐한다.


이 말은 결국 공공성을 띄는 교육이라는 영역을 사회가 ‘온전히’ 제공하지 못하고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공교육 강화의 필요성을 곳곳에서 이야기하지만 실질적인 개선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공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도 여전하다. 사람들은 학교로 대표되는 공교육 과정에서 충분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사교육 시장의 비대로 이어진다. 중, 고등학교 학생들은 과외와 각종 보습학원에서 학교 교육을 반복하여 학습하고 있고, 학교의 진도를 미리 배우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한다. 초등학교 학생들은 그들대로 각종 사교육 시장에서 중학교 공부를 대비하며 그들보다 더욱 어린 유치원 어린이집 아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각종 창의력을 위한 학습이며, 한글을 배우기 위해서 자기 몸집보다 더 큰 가방을 매고 오늘도 분주하다.


사교육 시장이 기형적으로 커지는 현상은 공교육 불신으로 인한 상대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사교육 시장의 팽창은 결과적으로 교육이라는 공공성을 띤 영역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교육을 개인이 떠맡는다는 것은 교육의 기회가 부모나 자신의 소득 정도 혹은 재산의 정도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말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은 앞서 이야기했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대의를 배반한다. 이러한 흐름에 의하면 교육의 기회는 가진 사람들의 기회이다. 또한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의 고착화로 귀결될 것이란 전망은 과연 지나친 비약인가?


영어 학원에서 이 곳에 방문했던 그 아이들에서 교육 기회의 차등을 느낀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정부는 세계화를 이야기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필수적인 언어교육,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느끼고 있는 영어교육에 대한 답을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부모들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아이의 영어교육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의 부모들은 그 옆의 일반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에 비해서 경제적인 능력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아마도 아이에 대한 교육열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지만 소득 수준에서 차이가 나는 사람들일 것이다.


혹시나 이 문제에 접근할 때 아이의 영어 교육을 시키는 것을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관점에서- 부모의 선택의 문제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즉 아이에게 영어 교육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영어학원을 보내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다른 것을 배우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보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아이의 교육에 관심이 많은 나라가 드물고, 영어 열풍이 나이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느 부모건 한번쯤 아이에게 영어 교육을 하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언어라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익숙해지는 것이 학습 효과가 크다는 생각이 보편화되어 있고, 조기유학이 영어교육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는 상황에서 영어학원을 다니게 할 것이냐 일반 유치원을 보내거나 다른 것을 배우게 할 것이냐는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소득수준에 비추어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인 것이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서 아이 교육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사실이 가지는 문제는 영어교육 자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불평등 구조의 고착화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영어교육을 받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와의 성인이 되었을 때 영어구사 능력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또한 영어구사 능력이 개인의 능력으로 인식되는 경향은 그 아이들이 자란 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들간에 성인이 되었을 때 소득격차가 존재할 것이라는 예측은 지나치지 않다. 부모의 소득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 자식 세대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이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도 부모들은 엥겔 지수를 낮춰가면서(?) 아이의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고, 기러기 아빠들은 혼자 지내는 생활을 감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를 둔 부모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소득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보다 나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는 돈이 많아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국가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나의 아이가 필요한 교육을 국가에서 균등하게 제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앞의 두 가지를 조합하여 행하는 것이며 네 번째는 사회의 흐름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대안적인 방법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굳이 영어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 방법들이 있을 수 있다.) 당신이 부모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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